저어새를부탁해
45.5 x 45.5cm, Mixed media, 2024
소비되는 온기와 사라지는 생명들 우리는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잠시 피하기 위해 일회용 손난로(핫팩)를 사용하고, 그 짧은 온기가 식어버리면 아무런 고민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립니다. 현대 사회의 빠르고 편리한 소비 형태는 필연적으로 거대한 폐기물을 양산하며, 이는 자연 생태계의 파괴로 직결됩니다. <저어새를 부탁해>는 이러한 맹목적인 소비와 개발의 이면을 직시하고, 버려진 물질에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여 생명의 존엄성을 묻는 혼합 매체(Mixed Media) 작업입니다.
버려진 핫팩 가루와 갯벌의 은유 이 작품의 가장 큰 조형적 특징은 캔버스가 아닌 단단한 나무 판넬 위에 구축된 거칠고 투박한 표면의 질감(마티에르, Matière)입니다. 이 입체적인 바탕재는 다름 아닌 다 쓰고 버려진 '일회용 손난로 가루'와 아크릴 젯소(Gesso)를 혼합하여 화면에 두껍게 밀착시킨 결과물입니다.
산화되어 붉고 검게 변한 철 가루의 거친 물성은, 인간의 무분별한 간척 사업과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무참히 파헤쳐지고 메말라가는 저어새의 서식처, 즉 '파괴된 갯벌'의 표면을 상징적으로 대변합니다.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산업 폐기물이 갯벌의 흙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편의가 다른 생명체의 터전을 어떻게 앗아가는지 시각적인 경각심을 던집니다.
시각적 대비와 파노라마 - 레진(Resin)이 빚어내는 빛의 윤슬 황량하고 거친 대지 위로, 석양빛을 머금은 멸종 위기종 '저어새' 한 마리의 실루엣을 조심스럽게 그려 넣었습니다. 화면 전체에 과도한 색을 나열하기보다는, 제한적인 색채를 사용하되 빛의 방향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색의 파노라마를 연출하여 주제를 집중시켰습니다.
작업의 마무리는 화면 전체를 투명한 에폭시 레진(Epoxy Resin)으로 덮는 과정을 거칩니다. 두껍게 올라간 레진은 거친 밑바탕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굳어진 표면 위로 빛이 반사될 때마다 마치 물결 위로 부서지는 '윤슬'과도 같은 신비로운 광학적 효과를 자아냅니다. 이는 생명을 잃어버린 갯벌 위로 다시 물이 차오르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내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소멸하지 않는 자연의 영롱한 생명력을 시각화합니다.
모든 것은 상호 의존하여 존재한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핫팩 하나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서식지를 잃어가는 저어새는 겉보기에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원인과 결과의 그물망으로 치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인간의 안위와 자연의 희생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철저히 상호 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이 작품은 중심과 주변의 위계 없이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사회의 구조 속에서, 우리가 타자의 고통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묻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역설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력의 숭고함 울퉁불퉁하고 차갑게 식어버린 표면 위에서, 저어새를 감싸는 따뜻한 석양빛과 투명한 레진의 반짝임은 지극히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저어새를 부탁해>는 단순히 환경 파괴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 버려진 것들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빛을 기록하는 작업입니다. 관람객들이 이 눈부신 대비를 통해 우리가 끝끝내 지켜내야 할 생명력의 숭고함, 그리고 공존의 온기를 다시금 마음에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