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킴
91 x 91cm, Ink and color on cotton, 2025
인간은 사회적 관계망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나, 역설적이게도 그 사회성은 인간 본연의 자연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집단의 존속과 조화를 위해 개인의 욕망은 절제되거나 억압되며, 이 과정에서 개인은 집단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 안주함과 동시에 주체성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다. 본인의 작품<엉킴>은 이러한 사회적 동물의 딜레마, 즉 관계의 과잉 속에서 발생하는 자아의 함몰과 종속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결과물이다.
작품의 주된 조형 요소인 '엉킨 실타래'는 들뢰즈(G. Deleuze)가 제안한 이상적인 관계망인 '리좀(Rhizome)'과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이다. 리좀이 이질적인 개체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되면서도 각자의 고유성을 보존하는 창조적 '다양체(multiplicity)'를 지향한다면, 본 작품에서의 엉킴은 개별성(나)을 식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용해'의 상태를 표상한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형상은 개인과 타자 사이의 건강한 연결이 아닌, 개인이 집단의 논리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꼿꼿하게 지탱하지 못하는 수동적 종속 상태를 의미한다.
이렇듯 작품은 얽히고설킨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상호의존성이 극단화되었을 때 발생하는 개인의 소멸을 다루고 있다.